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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막 : Harrum

출 처 : 씨 네 스 트
(cineaste.co.kr)

 

게오르크?

 

왜 아직 여기 있어?

 

파리가 봉쇄됐어.
이젠 못 나가

 

넌?

 

내일 떠나

- 어디로?
- 까시스

거기가 어딘데?

 

마르세유

 

배로 떠나

 

미국행 긴급비자를 구했어

뭔데?

 

재난에 처한 사람들이 받는 비자

 

네가 재난에 처했다고?

 

이러지 마

 

내 기사는? 신문은?

 

중요한 부탁이니 들어줘

 

사례는 하지

 

편지 두 통만 전해줘

 

직접 하지 그래?

 

바이델에게 전해줘.
알잖아, 그 작가

 

훌륭한 작가야, 예전에 엄청난...

 

난 모르는 사람이야

 

직접 전달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해봤어

 

호텔 관리인이 너무 이상해서

 

겁먹었다는 말이군?

 

신중한 처신이겠지

 

누가 쓴 편지인데?

 

작가 부인이

 

누가 신경쓰는데?

 

그 부인이겠지

 

이건 멕시코 영사의 편지

 

난 바이델 씨를 잘 알아.
출판사도 같고

 

돈은 언제 주는데?

 

편지가 제대로 전달되면

 

리아드 호텔, 6호실

 

난 여기서 기다리지

 

까시스엔 어떻게 가려고?

 

요즘 하인츠 때문에 힘들어?

 

아니

좋아

 

뭐가 좋아?

 

차에 자리 하나가 비어

 

한 사람만

 

올래?

 

그래

 

통행증
(통과비자)

 

실례합니다

 

여긴 어떻게 올라왔어요?

 

종을 울렸는데

 

듣지 못했어요

 

분명히 울렸어요

 

방을 구하는데

 

신분증 좀 보죠

 

방 안내 부탁해요

 

마음대로 골라요.
거의 다 비었어요

 

권해주면 좋겠어요

 

새벽에 해가 비추고

 

근사하고 호젓하며
새들이 보이는 방

 

독일인이군요?

 

점령국에서 왔어요?

 

투숙객은 모두 등록됐고요.
2주 전에 검열도 받았어요

아침 해가 비추고 새가 보이는
방으로 부탁해요, 아가씨

 

기다리세요.
아래층에서 열쇠 가져오죠

 

16호실, 근사한 방, 제일 좋은 방,
남쪽으로 큰 창이 있고

 

이 남자 호텔에 민폐만 끼쳤어요

 

점령되고 보름 지나니까
이 사람이 왔어요

 

전 호텔을 닫지 않고
여기 남았죠

 

이버지 말씀대로 떠나지 않았어요.
모두 도둑맞으니까요

 

바이델 씨가 호텔에 왔어요

 

그분이 나뭇잎처럼 떨어서
좀 의아했어요

 

등록 없이 머물게 해달라더군요

 

그런데 랑즈론 씨는
외국인 등록엔 엄격한 편이죠

 

명령은 따라야 하죠

 

그렇죠?

 

그 사람, 야단법석떨며
등록을 거부했어요

 

부부는 이미 이 방에
묵고 있었고요

 

그분들 여길 좋아했죠

 

사랑 때문에 그렇다고 하니...

 

마음이 약해졌죠

 

저도 프랑스 여자인데 별 수 있나요

 

딱 하룻밤만이라고 말했죠

 

다음날 내려오지 않길래
열쇠로 방문을 열었더니

 

그랬더니 이 몹쓸 난장판이

 

피범벅으로 뻣뻣하게 누워 있더군요

 

손목을 그었어요

 

그럼 시체는 어디에?

 

아는 생 슐피스 경찰이
처리해준대요

 

신원미상 사체,
화장, 무명 묘지

 

바이델은 승무원만큼 큰 골칫거리였죠

 

이 물건들,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챙겨가고 싶어요?

 

아무 문제만 없으면 좋겠어요

 

허가증 봅시다

 

저기 있어요! 저기!

 

나야

 

어디 있었어?
걱정했잖아

 

클레어! 뭐하는데?

 

오면 방을 수색할 텐데

 

진의 놀이방이라고 해

 

비밀 공간 때문에 그렇지.
늘 갖고 싶어 했는데

 

마치판!
(마치판 · 아몬드 가루, 설탕, 달걀 흰자로 만든 과자)

 

아이에게 사준다고 했는데

 

멜리사는 아이들과 함께 마르세유에 있어.
이 사람 정신 차리면 산으로 데려가

 

이 사람 힘들어서 안돼

 

모르핀하고 페니실린을
어렵게 구했어

 

이미 클레어가 짐 쌌어

 

저 사람 성공 못해.
분명히 말했다

 

집집마다 수색하고 다닌단 말이야!

 

옆집 남정네가 경찰 편이야

 

오늘 그 여자가
비밀 공간을 눈치챘어

 

신고하면 바로 들이닥친다고

 

이미 경륜장에 수용소를 차렸어

 

구역마다 뒤지고 있어

 

'봄맞이 대청소'라고 하더라

 

이런 젠장!

 

나한테 곁쇠(만능 열쇠)가 있어.
적어도 나흘 이상 가야 돼

 

가끔씩 문을 열어줘

 

햇볕과 환기가 필요해

 

하지만 검문소에선 모두 막아.
그래야 들키지 않아

 

알겠지?

 

멜리사 거처에 도착하면

 

며칠 기다렸다가

 

산에 있는 헨리한테 가봐

 

어떻게 그가 할 수...

 

그 사람 도와줘

 

도와줘야 해

 

겨우 구했다

 

받아

 

고마워

 

어서요

 

자네, 우리 모임에 들어와

 

바퀴는 이상 없어

 

휴가 때 어디 갈건가?

 

마라케시

 

좋지, 햇볕에다...

 

그는 하인츠를 얼마나 더
보살펴야 할 지 알지 못했다

 

너무 지루한 나머지
작가의 가방을 열어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원고를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모국어로 쓰여 있으니까

 

원고엔 그가 성내고 난폭해질 때마다
가여운 어머니께서

 

달래주시던 말이 적혀 있었다

 

글에는 미친 사람들,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등장했다

 

거의 모두 사악하고
모호한 것들에 얽혀 있다

 

거부하는 사람들마저 결국엔...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그를 빼닮은 한 인물이

 

실제처럼 구질구질한 작태를 보여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들 행위가 이해됐다.
자신도 언젠가는 결국

 

그들이 거역하지 못했던
그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살한 작가만
그런 식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 군상은 그다지 사악해보이지 않았다

 

배낭에 편지 두 통이 있다

 

하나는 그의 작품을
호평한 출판사 편지,

 

더 이상 발간할 수 없어
유감스럽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이 보낸 편지,
부인이 썼을 것이다

 

돌아가지 않으니 단념하라고,
그들 관계는 끝이라고

 

그는 파울이 바이델에게
전해주라던 편지가 생각났다

 

편지들은 여전히
게오르크가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마르세유의
멕시코 영사가 보낸 편지

 

바이델 씨가 멕시코로 이주하면
영광이라는 공식 서한,

 

비자와 여비를 보장했다

 

다른 편지는 그의 부인인데
그를 다시 봐야 한다고 썼다

 

그는 주저하지 않았고,
그녀는 기다린다

 

그는 곧장 부인을 만나러
마르세유로 가야 했다

 

혼란스러운 편지 한 통

 

허나 단정한 글씨

 

아니,

 

단정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다

 

'바로 떠나세요, 사랑해요'

'함께 멕시코에서 새롭게 시작해요'

'마리가'

 

하인츠!

 

하인츠?

 

하인츠!

 

놓으라구!

 

이거 놔!

 

이것 봐! 창문이 열렸어!

 

아잇, 냄새!

 

죽었어

 

손 놔

 

- 소지품을 챙기지
- 알았어

 

다음날 그는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손을 스치고 지난다

 

추워, 미스트랄답네
(프랑스 중부에서 지중해로 부는 몹시 차가운 북풍)

 

그는 지쳤고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정말 두려운 일이다

지저분하고 초췌한 얼굴,
넝마 차림인 당신을 주시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 세상에선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여자가 어깨를 툭 치자
그가 돌아봤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이다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그를 쳐다보다가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녀가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아한 흑색 코트와 멋진 구두

 

피곤해보이는 걸음

 

다시 그를 돌아봤다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걷는다

 

그때 느닷없이 경찰 사이렌이 울렸다

그는 단속을 피하려고 자리를 떴다

 

골키퍼 해줄래요?

 

몇 시니?

 

11시일걸요

 

학교 안 가도 돼?

 

 

일요일인데요

 

게임할래요?

 

오랫동안 공을 차지 않아서

 

골키퍼만 해줘요

 

공만 막아?

 

정확히 어떻게 해야 되니?

 

독일인 맞아요?

 

알아 듣니?

 

'골키퍼를 사랑해'만 알아들어요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쨌든 잘 해요

 

그래, 맞는 말이다

 

아저씨는 잘 해요?

 

 

정말로요?

 

그럼!

 

정말 잘 해

 

공 줘봐

 

바람 다 빠졌네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왜 공을 넣지 못 했지?

 

지지하는 다리 때문에.
공 차는 방향이 다 보이거든

 

제길!

 

독일말 해?

 

젠장, 원투 패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그게 전부니?

 

두어 개 더 알아요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게오르크라고 합니다.
부인 남편의 친구죠

 

여기로 함께 오던 중에

 

다리 부상이었는데
그만 감염이 됐습니다

 

그 친구가 죽었어요

 

호텔을 찾아다녔다.
은신하기 좋은 조용한 곳으로

 

하지만 호텔마다 만원이었다

 

일곱번째 찾아간 호텔에 빈 방이 있었다,
'반 방 없음' 간판이 내걸렸지만

 

일주일치 선불입니다

 

일주일요?

 

단속 때문에

 

또 손해만 볼 수 없죠

 

체류 허가증이 없어 보이네요

 

체류 목적이 아닌데요

 

그래도 신원 확인이 필요해요

 

어떻게 하면 되죠?

 

경찰서로 가셔서

 

비자와 선박 탑승권을 제시하세요

 

그러니까...

 

그래야만 묵을 수 있다고요?

 

체류가 아니라고 증명해야?

 

얼마죠?

 

이 여자가 조만간 밀고하겠지

 

오늘 아니면 내일이겠지

 

너무 기진맥진해서
신경쓸 여력조차 없었다

 

여자는 터무니가 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이제 빈털털이가 됐다

 

로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봤다, 불안에 차서

 

새로 온 그에게
무언가 말하고픈 눈치였다

 

그들이 겪은 일들,

 

현재 발급되는
통행증과 비자에 대해

 

방에 들어가서야
작가가 생각났다

 

작가가 쓴 최근 원고를
꺼내 읽었지만 별로였다

 

그는 너무도 허기지고
담배에선 악취가 풍겼다

 

허기를 달래려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작가 소지품을 챙겨
멕시코 영사관에 가서

중개수수료를 받아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배고픔에 너무 고통스럽다

 

이건 내 노동계약서죠

 

카라카스!
(베네수엘라의 수도)

 

난 지휘자요

 

카라카스를 알아요?

 

보이죠?

 

9월1일에 시작할 예정이오

 

이건...

 

내 비자, 제때 발급됐죠

 

저들은 현대음악이어야 한대요

 

정말 놀랬죠

 

레거와 노노에 정통한 사람더러
카라카스에서 현대음악을?

 

거기 사람들이 이걸 듣겠소?

 

여권 사진이
12매나 필요하다네요

 

보라구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모두 있죠

 

난 웃지 않아요,
귀로 다 보니까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아요

- 그렇군요
- 계속 퇴짜맞았죠

 

얼마나 들었나 하면

 

이건 탑승권이고

 

미국과 멕시코에서 정박하죠

 

그러니 통과비자가 필요해요

 

'저 운 좋은 놈은 같잖은 통과비자에
발이 묶였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죠.
저들도 싫어하거든요

 

우린 하선하면 억류될까봐 걱정이오

 

혹시 요깃거리가 있나요?

 

네?

 

아니오

 

그가 지휘자를 쳐다봤다

 

모든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바랬다

 

어떻게 죽음을 모면했는지

 

아이들, 남자, 여자,
피난중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본 소름끼치는 광경도

 

그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것들이 이쁘다는
말은 꺼내지도 말아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상관 없다면 패 죽이고 싶어요

 

아미와 존 블루멘베르크,
그 미국인들 소유물이죠

 

이 미친 것들이
워싱턴 행 비행기에 난입했어요

 

얘들 잘못은 아니지만

 

존은 유대계죠

 

나처럼

 

얘네는 탑승 금지예요.
그래서 배로 데려가야 하죠

 

그러면 비자를 얻는데
보증을 서준다나

 

그래서 여기에 묶였죠.
멕시코 통과비자 때문에

 

망할 수의사 면허증도

 

그들 집도 설계해줬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르세유가 이렇구나.
항구도시가 맞아"

 

있죠?

 

항구는 풍문이 떠도는 곳,
원래 그런 곳이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결국...

 

들을 수밖에 없지

 

전 당신네 멕시코에
머무르기 싫어요

 

꼴보기 싫은 인간들,
귀찮은 똥개들

너무 지나쳐요.
겁주는 이유가 뭔지

 

생명보험? 제기랄

 

이건 미친 짓이야

 

813번

 

당신이네요

 

그래요

 

뭐 하시는 건가요?

 

편지들하고 이 원고는...

 

번호표 주시죠, 고마워요

 

이건가요?

 

무슨 일입니까?

 

난 영사가 아닙니다.
제 업무는 지원서를 분류해서

부서에 배정하는 일입니다

 

바이델 일로 왔습니다

 

작가 바이델?

 

맞아요

 

저는...

 

잠시만요

 

영사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럼...

 

방금 전까지 부인이 여기 계셨소

 

비자2부와

 

선박 탑승권

 

그리고 우편환

 

웨스턴 유니언의 까느비에흐 지사는
24시간 개방합니다

 

3주 뒤에 출항하니까

 

서둘러 미국과 스페인
통과비자를 알아보세요

 

독일이 엑스과 까시스에 수용소를 짓고 있어요.
조만간 정화사업이 시작됩니다

 

죄송한데 오해가 있나 봅니다

 

멕시코는 직항이 없습니다

 

환승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억류될까봐 모두 염려합니다

 

부인 성함을 다시 알려주시죠?

 

부인 성함이

 

부인 성함을 잊어버리긴 힘들죠

 

부인께서 거의 매일 오시죠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즉시 와줘, 내 사랑

'마리가'

 

마리죠

 

맞아요, 마리

 

부인께서 늘상 우시던데

 

절 떠났죠

 

궁금한 점이 하나 있는데

 

질문에 가깝죠

 

누가 먼저 잊었나요?

 

버림 받은 남자?
아니면 남자를 버린 여자?

 

작가로서 의견은 어떤지

 

그녀를 기억하기 힘들군요

 

그날 오후 나는
처음으로 그를 봤다

 

그는 우편환을 환전한 뒤
창가에 앉아

마게리따 피자를 먹으며

 

차가운 로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쳐갔다

 

조만간 여기도
두려움과 혼란이 지배할 텐데

한다는 일이 쇼핑뿐이라고
그가 퉁명스럽게 뱉는다

 

내가 좀비가 상가를 습격하는
영화에 관해 얘기했더니

 

맞장구를 치더니 이랬다

 

"개념 없는 좀비들이군요"

 

운동하고 싶니?

 

뭔가 가지고 왔어

 

힘들어요, 아파서

 

엄마 계셔?

 

일하러요

 

라디오 듣네?

 

고장났어요

 

떨어뜨렸니?

 

몰라요

 

고칠 줄 알아요?

 

해보자

 

도와줄래?

 

보자...

 

그래...

 

잡고 있을래?

 

이렇게

 

그래, 이젠...

 

촛불 위에 놔

 

너무 가까이 대지 말고
더 뜨거워야 하거든

 

그래, 잘 했다

 

이거 잠시 빌리자

 

그래, 이쪽으로 조금 더

 

되는지 확인해볼까

 

숨은 왜 참니?

 

편하게 숨쉬어

 

축구한다 생각하고
차분하게 숨쉬면 돼

 

이제 숟가락을 이쪽으로...

 

조금만 더, 좋았어

 

치우고

 

됐네, 고친 것 같아

 

그럼 확인해볼까

 

잘못 됐어요?

 

아는 노래야

 

어머니께서 잘 자라고
불러주시던 노래

 

♬ 대구가

 

♬ 집으로 오네

 

♬ 코끼리가

 

♬ 쿵쿵대며 집으로 오네

 

♬ 개미가

 

♬ 집으로 몰려오네

 

♬ 등불이 켜지고

 

♬ 날이 저무네

 

엄마가 이게 직업이냐고 물어보래요

 

 

라디오하고 텔레비전 수리공이야

 

수습은 다 마쳤어요?

 

아니

 

파시스트가 금지시켰어

 

노래 한번 더 해줄래요?

 

엄마가 노래를 보고 싶대요

 

♬ 나비가

 

♬ 집으로 오네

 

♬ 새끼 곰이

 

♬ 집으로 오네

 

♬ 대구가

 

아니다, 잠깐

 

♬ 헤엄쳐서 집으로 오네

 

♬ 등불이 켜지고

 

♬ 날이 저무네

 

이제 대구가 집에 왔어

 

♬ 대구가

 

♬ 헤엄쳐서 집으로 오네

 

♬ 코끼리가

 

♬ 쿵쿵대며 집으로 오네

 

♬ 개미가

 

♬ 우르르 집으로 오네

 

♬ 등불이 켜지고

 

♬ 날이 저무네

 

♬ 여우와 거위가

 

♬ 집으로 오네

 

♬ 고양이와 생쥐가

 

♬ 집으로 오네

 

♬ 남편과 부인이

 

♬ 집으로 오네

 

그는 헤어졌다

속담처럼
노래가 그를 흔들어버렸다

 

울었을지도, 북받쳤으니

 

멜리사와 드리스의 눈길이
그에게 머물렀다

 

드리스가 물었다.
늦었으니 자고 가면 어떻냐고

 

그는 급한 일이 있다고 했지만

 

밤길을 걸어 호텔로 갔다

 

다음날 드리스와 놀겠다고 약속했다

 

그 노래가 마음에서 계속 맴돌았다

 

♬ 모든 게 꿈이지
마음이 갈팡질팡

 

♬ 이야기가 제멋대로 자라네

 

♬ 저녁이 우리집에서 잠들 때마다

 

잠시만요

 

신분증

 

체류허가증도

 

- 탁자에
- 그래?

 

그럼 보여줘

 

급하니까 서둘러!

 

그는 그 여인이
끝났다는 듯 바라봤다

 

여인 남편과 아이들의 절규가 들렸다

 

다른 이들 역시 지켜보기만 했다

 

이들은 연민도 없나?

 

자신 가족이 아니라서 안도했나?

 

복도에 있던 한 사람,
개를 데리고 있던 여자였다

 

눈이 마주쳤다

 

한동안 서로 응시하다가

 

눈길을 거뒀다

 

그는 모두가 왜 미동도 없이
숨죽이는지 잘 알았다

 

그건 수치였다

 

다들 부끄럽고

 

끔찍하게 부끄러우니까

 

다음날 그는 드리스를 찾아가

 

초라한 바닷가 축제에 데려갔다

 

엄마하고 산으로 가거든요.
같이 갈래요?

 

그럼 말이야

 

배수구에 깡통을 넣으면

같이 갈게.
자, 연습해

 

저 배수구요?

 

- 응
- 그래요

 

잠깐만, 너무 쉬우면 안되니까

 

다리를 잘 지탱해서

 

- 젠장
- 이런

 

한번 더 해봐

 

아니 기다려, 너무 가깝네.
조금만 뒤로, 좋아

 

초컬릿 선데이 아이스크림요

 

일 좀 보고 바로 올게, 알았지?

 

어디 가는데요?

 

길 건너 깃발 걸린 건물에

 

얼마 안 걸려

 

곧 돌아올게

 

먹을 것 좀 있나요?

 

바이델 씨?

 

바이델 씨?

 

 

어째서 미국에 비자를
신청하지 않으셨을까?

 

당신 동료분들은 많이 했는데

 

비자 요청이
거부 당할까봐 주저하셨군요

 

제 말이 맞나요?

 

뉴 프론티어 기획 기사가

 

'CIA가 지원한 연방주의자의
알메이라 피격 사건'이죠

 

당신도 관여했고요

 

아니오

 

뉴 프론티어는 공산주의자 신문이죠

 

관여한 적 없습니다

 

멕시코에는 왜?

 

거기선 공산주의자를 환영할까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죠

 

멕시코가 끌리는 이유는?

 

무슨 일을 하시려고?

 

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업을 구상하셨습니까?

 

라디오와 텔레비전 수리업

 

그럼 이런 글은
쓰지 않는 겁니까?

 

 

하지만 작가가 글을 쓰지 않으면...

 

어린아이였을 때

 

학교에서 자주 야외학습을 나갔죠

 

근사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운 없게도

 

다음날 선생께서
작문 숙제를 내주셨죠

 

"우리 야외 학습"

 

공휴일 다음날이면
늘 작문 숙제가 따랐죠

 

"공휴일에 내가 한 일"

 

또는

 

"공휴일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든가

 

심지어 성탄절,
선물 받는 날, 축제 때도

 

늘 작문 숙제뿐이었어요

 

"내가 보낸 성탄절"

 

그 당시에 쓰다보면
사실인 것처럼 생각됐죠

숙제 때문에 썼을 따름이지만

 

저와 함께 수용소에
갖혔던 작가들에게는

 

두렵고 끔찍했던

 

모든 사건들이
단지 작품의 소잿거리였죠

 

수용소나 탈출도

 

죽음도

 

전쟁까지도

 

더 이상 숙제하듯
쓰진 않으려고요

 

당신 같은 작가에겐
무척 힘든 고백이겠군요

 

기척도 없어

 

미안해요

 

별로구나?

 

다른 걸 먹을래?

 

어딜 가요?

 

미국으로?

 

멕시코로

 

언제요?

 

23일에

 

몬트리얼 호로 가

 

다른 데서 아이스크림 먹자.
항구는 어때?

 

응?

 

아님 축구 연습하는 건 어때?

 

소년이 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울음을 힘겹게 참아내고 있음도

 

난 도망가야 해

 

슬픔을 견디는 아이를
안아서 위로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다

 

언제든 갈 수 있어서 좋겠네!

 

지휘자 양반은 어떤가요?

 

죽었어요

 

밥을 사주실 수 있나요?

 

네?

 

밥을 사주실 수 있어요?

 

개들이 절 피말리네요.
이젠 한푼도 없어요

 

수의사 자격증이
금세 나올 줄 알았는데

 

잠시 기다려요

 

여자가 내게 쪽지를 건넸다.
진짜로 청각과 언어장애가 있었다

 

가려고...

 

많은 난민들이 이런 식으로
푼돈을 벌곤 한다

 

사정을 담은 쪽지와 인형을
탁자마다 놓아두고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 여인은
아들을 살리려고 돌아다녀며

독일인 의사를 만나기 바랬다

 

그는 곧바로 나와
난민들 중 의사를 찾아다녔다

 

항구 호텔에서 바로
의사를 찾을 수 있었다

 

카셀 출신 소아과 의사

 

안녕하세요?

 

네?

 

이곳에 의사가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잠시만요

 

당신 찾아

 

우리는 의사가 급합니다

 

우리라니?

 

아이입니다, 여덟 살 정도

 

어떻길래?

 

잘 모릅니다

 

숨을 쉬지 못해요

 

왜 응급실로 가지 않나요?

 

불법 체류자입니다

 

아이와 엄마 모두

 

당신은 아니고?

 

아뇨, 저도 그렇죠

 

머나요?

 

10분 정도

 

잠시만, 물건 좀 챙기죠

 

이따 봐

 

 

아이가 뭘 먹었죠?

 

모르겠어요

 

하루 동안 보지 못해서요

 

전 아빠가 아녜요

 

친구 아들입니다

 

친구가 죽었죠, 요 근래에

 

아이 엄마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죠

 

아이 이름은?

 

드리스

 

아프리카인?

 

멜리사가 엄마고, 마그레브 출신이죠
(마그레브 · 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

 

드리스는 천식이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앞으로 또 이럴 수 있단다

 

최근에 바깥에 자주 나갔니?

 

꼼짝말고 며칠만
침대에서 지내거라

 

맛있는 간식을 먹어야 한다고
엄마에게 말해줄게

 

뭘 먹고 싶니?

 

아니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텐데, 맞지?

 

혹시 팬케이크?

 

- 맞니?
- 네

 

엄마가 만들어 주시겠지

 

엄마 모셔올게

 

이리 오시죠

 

어머니만

 

천식이 심하게 도졌어요

 

누워 지내야 합니다

 

하루 3번, 식사 뒤에 조금씩 먹이세요

 

미스트랄은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엄마하고 산으로 갈 건데요

 

산이 건강하게 해주겠구나

 

아이한테 뭘 했소?

 

네?

 

분명히 당신 때문이오.
선생 보기를 꺼리더군요

 

방에 들어오는 것도

 

혼자 떠나게 됐거든요

 

산에 가지 않는군요?

 

 

선생과 산에 가길 바라던데,
아빠처럼 따르더군요

 

같이 가지 못할
이유라도 있소?

 

멕시코로 떠납니다

 

왜요?

 

뭐요?

 

나도 가고 싶군요

 

그럼 가면 돼잖아요?

 

제출하지 못한 서류라도?

 

아니, 모두 제출했죠

 

출항은 언제?

 

화요일에

 

그럼 무슨 문제라도?

 

나도 누군가 버려두고 떠나야 하죠

 

누구?

 

여인

 

식사 대접해도 될까요?

 

우린 이미 3주 전에
떠날 수 있었어요

 

그땐 염병할 비자나
통과비자가 필요 없었죠

 

제대로 준비됐죠.
탑승권도 있었고

 

거의 떠날 뻔했죠

 

닻을 올린다라는
표현이 적절하겠군요

 

그때 그녀가 하선했죠

 

따라 내렸죠

 

지금은 떠나기 힘들군요

 

가능해요

 

입국비자가 있고
통과비자에다 탑승권까지

 

에스페란짜 호가 화요일
밤 9시, 12번 부두에서 떠나죠

 

리스본과 몬테비데오를 경유해서

 

오늘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통과비자가 나왔어요

 

그럼 언제 승선하세요?

 

여기는 2주 안에
지옥이 되죠

 

알다시피 이미 리옹까지 점령됐어요

 

여인을 놔두고
떠나신다는 말인지?

 

병원을 차려야 하죠.
약속한 일이니

 

해야 할 일이고
더는 지체하기 힘드네요

 

그녀도 아시나요?

 

말했죠

 

꼭 가야죠.
환자들이 기다리니

 

그녀도 알고요

 

이해해요

 

이해해요?

 

네, 그래요

 

마음이 참 추한 데다
제 격려까지 바라시니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나 생각드네요

 

위안도 주지 못하면서

 

그 사람 찾았어?

 

이것 좀 먹어 봐

 

고마워

 

자-

 

의사 찾던 사람이 당신이군요

 

 

접니다

 

이분이 이제 마음을 정했대

 

멕시코로 간대.
아이는 여기에 두고

 

무슨 말을?

 

결정했다면서?

 

아님 잘못 들었나?

 

아이를 아끼지.
뻔히 보이거든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때
자네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봤네

 

아이를 아끼지만
그 곁을 떠날 생각이지

 

내 아들도 아닌데

 

뭐가 다르지?

 

이 여자가 내 부인도 아닌데

 

그녀 발소리가 들렸다

 

문 풍경이 울리고
여인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벵투 산 까페를 떠났다

 

돌아섰을 때, 탁자에 앉은
의사가 쓸쓸해 보였다

 

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갔다

 

자신의 외로움과 마주하러

 

네?

 

게오르크입니다

 

어제 저녁에 뵈었죠

 

여기 없어요

 

들어오세요.
곧 돌아오겠죠

 

차라도?

 

그러죠

 

어디 계시죠?

 

아이한테 갔어요

 

드리스에게 일이라도?

 

아뇨

 

상태 확인하러

 

좋은 의사죠, 훌륭하고

 

마르세유에 괜찮은 중고품점이 있나요?

 

구하는 거라도?

 

아뇨, 팔려고요

 

돈이 떨어졌나 보네요?

 

뻔하죠

 

늦을 것 같네요

 

통행에 문제 없는지
또 알아보러 갔겠죠

 

그럼 떠나나요?

 

그래요, 진짜로

 

그런데 당신은 남고요?

 

뾰족한 수이라도 있나요?

 

당신은 남고 싶으세요?

 

전에 거의 떠날 뻔했다고 하던데

 

뭐라고 했더라?

 

닻이 올려졌다,
그녀가 하선했을 때

 

그런 말이었어요

 

맞아요

 

이젠 내릴 생각 없죠?

 

무엇 때문에 마음이?

 

모든 게...

 

누가 먼저 잊었을까요?

 

버림 받은 남자?
남자를 버린 여자?

 

어떻게 생각해요?

 

그 사람이 먼저 절 잊었어요

 

누가요?

 

제 남편

 

어떻게 알죠?

 

영사가 알려줬죠

 

어떤 영사?

 

멕시코 영사

 

그가 의심했을까?

 

우린 떠나야 한다고 말했죠

 

앉아서 그녀 이야기를 들었다

 

담배 피고, 글 쓰고, 마시고

 

어떻게 해서 남편을 떠났는지

 

성문마다 독일군이 있었죠

 

파리에서

 

거기서 이 사람을 만났어요
어떻게 해서 의사 차로 뛰어들었는지

 

어떻게 독일군을 피했는지도

 

이 사람이랑 차에
함께 있는 일도

 

남편에게 이별 편지
쓰는 일도 쉬웠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이 여인은 마르세유에서
그를 찾아다녔고

 

그가 여기 있다

 

멕시코 영사관에

 

미국 영사관에

 

까느비에흐 거리에

 

벵투 산 까페에

 

필사적이지만 무의미했다

 

지금까지 계속 찾고 있어요

 

모두 그를 본 적 있다

 

왔다는 흔적만 봤죠

 

웨스턴 유니언에서

 

멕시코...

 

미국과 멕시코 영사관에서도

 

늘 한발 늦었어요

 

버림 받으면 잊지 못한다는데
그럴까요?

 

거짓말

 

버림 받으면 애처로운 노래가 남죠

 

애통하니까

 

버린 자에게는

 

아무도 없어요

 

노래도 없어요

 

마리!

 

당신을 잊지 않았어요

 

계속 절 피하는데요?

 

그때 왜 배에서 내렸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었나요?

 

몰라요

 

그럼 왜 지금도 그를 찾아요?

 

제 비자를 갖고 있어요

 

남편이 없으면 떠날 수가 없죠

 

파리에 있는 남편 지인에게 부탁했죠.
제 편지를 전해달라고

 

뭐라고 썼냐면

 

마르세유에 와야 한다고요

 

우리 비자가 이곳에 있으니까

 

편지를 받았대요

 

전 알고 있어요

 

의사를 사랑해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

 

당신 누군가요?

 

여기서 뭐하오?

 

선생님 뵈러 왔어요

 

어, 그런가?

 

아이는 차도가 있어요

 

코티손이 제대로 듣네요

 

이삼일이면 뛰어놀게 됩니다

 

배낭을 가져오셨군요

 

여행용 신발도

 

그 생각은 정신나간 짓이예요

 

내가 뭘 계획하는데?

 

이 여자와 피레네로 갈 생각이군요

 

벌써 탑승권을 팔았어요?

 

탑승권을 팔았어요?

 

마리 비자를 구할 수 있어요.
멕시코 탑승권도요

 

떠나실 수 있어요

 

마리를 데리고 따라갈게요

 

23일, 몬트리얼 호

 

얼마를 원하는지 말해 봐

 

5천?

 

그렇게는 힘들고
선금으로 2천이면 되겠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먹여야겠지

 

그래도 자네는 한몫잡고
우린 자넬 만나서 다행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아요

 

그럴듯한 대답을 해야지

 

이제 가주게

 

마리 출생일하고
인적 사항이 필요해요

 

2시에 벵투 산 까페에서 봐요

 

비자와 탑승권 가지고 가죠

 

그는 유리창 너머로
마리와 리차드를 봤다고 했다

 

그때 마리가 쳐다봤다

 

그가 왔다는 사실을 아는듯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까페에서 만났다

 

그가 비자와 탑승권 가지고 왔지만

 

리차드는 못 미더운듯
항만관청으로 떠났다

 

탑승권을 확인하기 위해

 

확인해봐야죠

 

네, 그러세요

 

둘은 앉아 기다렸다.
남들이 보면 연인처럼 보였을 것 같다

 

나는 둘이 손잡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마리 눈에
고인 눈물도

 

나중에 그가
마리에 대해 말해줬다

 

그 눈물이 기쁨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녀에게 입맞추고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윽고 리차드가 돌아와
피자와 포도주를 시켜

잠정적으로 축하했다

 

리차드식 표현인데

 

스페인과 미국 통과비자를
여전히 구하지 못해서다

 

언제 출항이죠?

 

23일이죠

 

이번 달?

 

다음 달에
배가 있을 지 걱정이네요

 

부인 통과비자도 바로 신청했어야죠

 

이건 매우 힘든 일이 된...

 

표시한 데에
아내를 기입주세요

 

"통과비자를 신청중인 자"

 

지금 제게 업무 교육하시나요?

 

독특하시네요

 

제 아내와 이민이라도 갈까요?

 

며칠전만 해도 싫다고 하셨죠

 

진짜 직업을 바랬고

 

기생충 같은 글쟁이들 본성이

 

혐오스러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진정한 사랑을 논합니까?

 

네?

 

멕시코에 가면 당신에겐
아담한 집과 정원이 생기죠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당신 부인은

 

만나서 반가웠던 분이죠

 

무척 자상하시고

 

부인은 거기 앉아 계시겠죠

 

저녁식사를 위해 향초를 썰면서

 

선생은 그런 아내를 바라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덤불에,

 

당신은 글 쓰는 편이 낫겠어요

 

이걸 제시하세요.
며칠 안으로 서류가 나올거요

 

고맙소

 

질문 하나만

 

선생 최근 작품은 뭡니까?

 

'한 남자가 죽었다'

 

'그는 지옥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는 거대한 문 앞에서 기다렸다'

 

'하루 기다리다가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흐르고
몇 달, 몇 년'

 

'그러다가 어떤 남자가 지나갔다'

 

'호명을 기다리던 그 남자는'

 

"절 도와주실래요?
지옥에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남자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선생, 여기가 바로 지옥이오"

 

리차드는 탐탁치 않았지만
마리는 고집대로 그를 따라 승선하기로 했다

 

리차드는 게오르크와
악수를 나눴다

 

그러더니 마리에게 문을 열어줬다

 

마치 그녀도 떠난다는듯

 

그때 그는 호텔 방으로 올라가
마리를 기다렸다고 내게 말해줬다

 

작별을 고하며 마신 포도주는
여전히 탁자 위에 있다

 

그는 앉아 홀로 마셨다

 

담배를 물고, 기다리며

 

창가로 가 창문을 열었다

 

그녀가 오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요

 

이리 와요

 

이리로

 

미안해요

 

왜요?

 

왜 미안하죠?

 

당신과 떠나지 않아요

 

당신과 가지 못해요.
여기 남겠어요

 

그럼 뭐하러 이랬어요?

 

리차드가 배에 오르길 바랬어요

 

그이는 멕시코로 가야 해요

 

당신은?

 

남편을 찾아야죠

 

게오르크

 

기다려요

 

기다려요

 

마리

 

남편은 죽었어요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는 리차드가 승선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프랑스 공무원 무리가
객실을 점거하고

 

리차드와 몇몇을
강제로 하선시켰다

 

그는 리차드가 겪은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마리가 곁에 앉아
리차드를 위로했으나

그는 너무 슬픔에 빠져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게오르크는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자신이 저녁 내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잠든 후 자리를 떴으니까

 

어떻게 자리를 떠났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리를 물끄러미 쳐다봤지만
그녀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 뒤 밤길을 걸어
자신이 묵던 호텔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자신은
며칠 안에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때 드리스에게 불러줬던
저녁 노래가 불현듯 떠올랐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서늘함-

 

드리스

 

나야

 

안녕하세요?

 

멜리사와 드리스를 만나러 왔습니다

 

여긴 그들 집인데?

 

갔습니다

 

어디로 갔나요?

 

멀리 떠났어요

 

언제, 갔나요?

 

고마워요

 

잠시만요!

 

미안해요

 

함께 식사하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건강을 위해

 

 

건강을 위해

 

개가 보이지 않네요?

 

가버렸어요

 

도망갔어요?

 

죽었어요

 

안됐네요, 모르고 있었어요

 

말하기 싫어요

 

단지 먹고 마시면 돼요,
혼자 먹긴 싫거든요

 

그녀는 다소 명령조로
그에게 담배를 말라고 했으며

커피를 마신 뒤 식사대를
지불하고 둘은 걸어다녔다

 

루디 루치오티는 건축가였죠

 

어쨌거나 이제 그들은
건축에 대해 말을 나눈다

 

리치오티,

 

상가지구와 옛 요새를
보행자 전용 교량으로 이은 천재

 

그래서 그녀는 마르세유에 오기를
간절히 고대했다고 한다

 

... 그리고 콘크리트 패턴으로
마감한 건물이죠

내부에서 그걸 통해 밖을 볼 수 있죠.
정말 아름다워요

 

저도 하나 줄래요?

 

그들은 담배를 물었다

 

그는 그 순간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말했다

 

마리를 잊을 수 있을 같고
만사가 명료했다

 

그는 떠나기 전 며칠 동안
호텔에 누워 지냈다

 

기다리면서

 

이제 오로지 바라는 일은
사라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밤에만 밖으로 나왔다

 

절망에 차 있는
리차드를 다시 마주 했다

 

그는 숨어버린 겁쟁이 같았다

 

그는 마리 만나기가
두려웠다고말했다

 

그는 짐을 꾸렸다

 

이곳에서 마지막 밤이 지난다

 

다음날 오후에 그는
배에 올라 사라져야 했다

 

결국 당신을 찾았어요!

 

모두 몸을 돌려 그들을 쳐다봤다

 

이런 격렬한 포옹에
고객들이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불행할 때
이방인의 기쁨이 불쾌한 법이다

 

벵투 산 까페 분위기는 침울했다

 

아비뇽 정화사업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한다

 

수용소가 포화 상태라
이송이 시작됐다

 

이젠 마르세유로 진군 중이다

 

나중에 그가 말하길,
그녀가 자신을 데려가라고 되뇌었다고 했다

 

너무 두려워 하기에
남편 찾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의 호텔로 갔다

 

그녀는 자신의 호텔을 꺼렸다

 

그녀는 여행가방을 가리키며
이미 모두 준비됐다고 했다

 

너무 목말라요

 

물밖에 없는데

 

아주 좋아요

 

침대에 앉은 그녀는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물 한잔을 부탁했다

 

욕실 거울 앞에 선 그는

 

불운했던 작가,
그녀 남편을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일을 고백하고 싶었다

 

욕실에서 나오니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고
온화하며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를 그렇게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녀가 밤낮없이 온통
거리를 헤맸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으면 영사관에 들르고
신속히 승선하면 된다

 

곧 돌아올게요

 

그 순간만큼은 서류가 제때
교부되리라 확신했다고 털어놓았다

 

출항까지 앞으로 3시간 남았다

 

그는 저 아래 기다리는 마리를 쳐다봤다

 

아침 해가 모퉁이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해를 가리고 지켜봤다

 

바이델 씨!

 


마리가 앉아 있는 곳,
갑자기 드리스가 생각났다

 

바이델 씨?

 

드리스,
아이스크림도 외면한 채

 

네!

 

직원이 이름을 불렀다

 

마리!

 

선착장 부탁해요

 

뉴욕에서 성탄절 선물
사러가는 것 같네

 

뉴욕에 가본 적 있어?

 

 

거기서 코트를 사가지고 왔어

 

- 리차드?
- 아니, 남편

 

난간에 서서 남편은
항구를 쳐다보고 있겠지

 

기차에서도 거꾸로 앉거든

- 그래?
- 그래

 

어디 난간?

 

배 난간

 

어떤 배?

 

우리 배, 몬트리얼 호

 

그가 몬트리얼 호에
탔다고 생각해?

 

영사가 그랬어

 

영사한테 다녀왔어?

 

놀랄 걸 상상해봐

 

남편은 난간에 서 있고

 

내가 이름을 소근거리면
날 돌아보겠지

 

그는 난간에 있지 않아

 

아니야

 

거기 있어

 

날 용서해주겠지

 

남편을 잘 알아.
웃고 용서할 걸

 

당신도 좋아할 걸

 

이건 당신 탑승증이야

 

그리고

 

여기에 번호를
꼭 써 넣어야 해

 

이건 통과비자

 

- 알았지?
- 고마워

 

잘 챙겨

 

세워 주세요

 

왜 그래?

 

잊은 게 있어

 

게오르크?

 

중요해?

 

곧바로 갈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리차드?

 

이젠 뭘 원하는데?

 

승선이 거부됐나?

 

당신 탑승증이 있어요

 

필수품만 챙겨요

 

왜 이러는지

 

그가 말하길,
리차드가 빤히 쳐다보고 있어

 

최대한 빨리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한다

 

사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리차드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리차드는 묻지도 않은 채
돈을 건넸다

 

5천, 그가 지녔던 현금이 그 정도

 

리차드는 탑승증을 건네받고
성급히 거리로 나갔고

 

게오르크는 창가에 서서 내려다 본다

택시를 기다리는 리차드를

택시가 도착했을 때
리차드는 한번 더 위를 올려다 봤다

거기엔 일말의 경멸도
섞이지 않았을까?

 

리차드는 그를
위조범, 인신매매꾼으로 생각했다

 

피난민의 불행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

 

그는 바다를 바라다 봤다

 

마침내 고동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바다에 나온
몬트리얼 호를 보았다

 

배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뒤에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는 웃었다

 

제가 따분하죠?

 

그가 날 지루하게
만들었냐고 묻는다

 

이젠 뭘 하시려고?

 

돈이 있어요

 

의사 양반의 여행 신발이
제게 맞아요

 

피레네를 넘어가볼까 해요

 

미친 짓이라고
당신이 말해놓고선

 

아비뇽이 함락됐나요?

 

맞아요

 

이걸 맡아 주시겠어요?

 

물론이죠

 

마리!

 

- 실례합니다
- 네

 

어제 출항한 몬트리얼 호에
한 여성이 탑승했는지

 

여쭙고 싶은데 가능하신지

 

카림!

 

12번 처리해.
서둘러, 시간 없어

 

여자가 정말로 탔는지
승객 명단을 확인해주시겠어요?

 

여성분 이름이?

 

마리...

 

어... 바이델!

 

W-E

 

W-E-I-D-E-L

 

- 마리 바이델
- 마리 바이델

 

- 네
- 네?

 

탑승했어요

 

지금도 타고 있어요?

 

정말 죄송하군요

 

보통 우린
친족 요청만 들어주는데...

 

그들이 성문에 있어요.
공격이 시작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는 줄 알았는데

 

제가 뭘 아는데요?

 

몬트리얼 호가 오늘 아침
발레아레스 제도 앞에서 폭파됐어요

 

침몰됐죠.
생존자는 없어요

 

애도를 표합니다

 

그는 문을 등지고 앉아

 

문이 열릴 때마다 돌아봤다

 

그는 고개 돌리기를 꺼리는 듯했고

 

거울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매번 되풀이했다

 

마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해변으로 떠밀려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거나

 

아니면 사자의 혼이
저승을 찢고 나올 수도 있으니까

 

희생과 간절한 기도만 있다면

 

나는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고
피신처를 제공했다

 

어제 아침 정화사업이 개시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바에 앉아 머무른다

 

그녀를

 

기다리며

 

프란츠 로고브스키

 

폴라 베어

 

고데하르트 기즈

 

릴리언 바트만

 

마리암 자레

 

바바라 아우어

 

매티아스 브란트

 

세바스티안 휠크

 

에밀리에 데 프레이싹

 

안토이네 오펜하임

 

로날드 쿠쿨리스

 

유스투스 폰 도나니

 

알렉스 브렌데뮐

 

트리스탄 퓌터

 

감독 · 크리스티안 펫촐트

 

각본 · 크리스티안 펫촐트 / 원작 · 안나 제거스

 

출 처 : 씨 네 스 트
(cineaste.co.kr)

자 막 : Har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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